BC125,000년年(해)year PhaetonMaldek Planet Maldek 명상수도를 통한 해탈 한가지 관점에 대한 해석방식 만일 나의 내가 해탈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해탈이라는 관점이 생성되다. 그리고 해탈을 하려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규율짓다. 우선 여색을 금해야 하다. 여자생각을 하면 절대 해탈할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난다. 화를 내면 안 된다. 분통이 터지지만 화를 내면 안 되기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정신수양이다. 그래서 인욕하며 참는다. 그러다보면 화가 사라진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화기가 쌓인다. 일단 생겨나면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 않는데 그것도 우주법칙이다. 없어진것 같지만, 나중에 가면 또 생겨나고 보이기 시작한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이런 것들을 회피하며 빠져나가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부처가 말한다. 사는게 해탈이다. 나는 단 한마디도 말한 바가 없다. 원본품, 원본심, 원본색을 짓누른다. 화가 치밀고 속이 뒤틀린다. 그러나 수양으로 다스린다. 다스려지기는 하지만, 없어지지 않는다. 원본품, 원본심, 원본색이란, 쉽게 안 바뀐다. 아무리 수양해도 안 바뀐다. 이것을 바꾸려면 아주 아주 오랜세월을 살아야 하고, 또 아주 아주 무섭고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그 원본심이 상하로 좌우로 뚫리고 터질때까지 그러한 시련에 맞부딫쳐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그대로 있다. 다스리기는 하겠지만, 그대로 존재한다. 그게 업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약 1조년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수도명상이란 다스리는 억제력 절제심을 연마하는 것이지만, 그것 자체를 어떻게 할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타고난 monad적 특성일수도 있고, 좌우지간 창조된 상황이다. 창조를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그것도 우주법칙이다. 한번 생겨나면 안 바뀐다. 그리고 바꾸려면 고혈을 쥐어짜는 시련과 어떤 국면에 대한 진실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잠시동안 그러한 자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해서 명철하게 돌아다보게 한다. 그러한 일은, 생전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동안의 의식으로는 아무리 지랄해도 그러한 의식을 가질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온다. 생전의 의식과는 전혀 다른 의식이 갑자기 느껴지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려가는 극한의 그 무엇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통한 미망의 삶의 틀의 파괴이다. 우리는 사후상태를 본다. 이건 정말이다. 큰소리치지 말자 일단 죽으면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파충류마왕을 본다. 세상이 끝장난다 의식이 소멸되고 세상이 스러져 사라져간다 그러한 충격과 공포들 그리고 깊고 깊은 심연의 그 진실들은, 죽음이후의 의식과 유사하다. 죽음이후에 그러한 의식이 기억되어지고 느껴지고 알게 된다. 생전의식이란 Matrix에서 살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만든 의식들이다. 그러나 죽음이후의 의식들은 보다 진실에 가까운 영적의식들이다. 파충류마왕을 보고 느낀 그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어떤 상태란 죽음이후의 회고와 비슷할수도 있다. 어쨌든 명상수도란 그와 같다 혼쭐이 나야 제 정신을 차린다고 말하는데, 그게 맞다. 세상의 모든 재앙과 고통들은 어떤 의미로 인해서 생겨난다. 그것을 회피한다면 영원히 구속된다. 죽음이 해방을 가져오듯 그리고 각성을 가져오듯 재앙과 고통은 해방과 각성을 가져온다. 일반적 명상수도로서는 도저히 알수 없는 진리와 진실들이 거기에 있다. 죽음이후에 비통하게 흐느끼며 후회하는 영들을 본다. 그 흐느낌은 너무도 비통하여 말릴수조차도 없다. 생전의 잘못들에 대한 어쩔수 없는 비통함이 죽음이후의 연옥의 상태이다.(실제있다) 명상수도로는 알수 없다
BC125,000년年(해)year
PhaetonMaldek
Planet Maldek
명상수도를 통한 해탈
한가지 관점에 대한 해석방식
만일 나의 내가 해탈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해탈이라는 관점이 생성되다.
그리고 해탈을 하려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규율짓다.
우선 여색을 금해야 하다. 여자생각을 하면 절대 해탈할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난다.
화를 내면 안 된다. 분통이 터지지만 화를 내면 안 되기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정신수양이다. 그래서 인욕하며 참는다. 그러다보면 화가 사라진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화기가 쌓인다. 일단 생겨나면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 않는데 그것도 우주법칙이다.
없어진것 같지만, 나중에 가면 또 생겨나고 보이기 시작한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이런 것들을 회피하며 빠져나가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부처가 말한다. 사는게 해탈이다. 나는 단 한마디도 말한 바가 없다.
원본품, 원본심, 원본색을 짓누른다.
화가 치밀고 속이 뒤틀린다. 그러나 수양으로 다스린다. 다스려지기는 하지만, 없어지지 않는다.
원본품, 원본심, 원본색이란, 쉽게 안 바뀐다. 아무리 수양해도 안 바뀐다.
이것을 바꾸려면 아주 아주 오랜세월을 살아야 하고, 또 아주 아주 무섭고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그 원본심이 상하로 좌우로 뚫리고 터질때까지 그러한 시련에 맞부딫쳐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그대로 있다. 다스리기는 하겠지만, 그대로 존재한다.
그게 업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약 1조년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수도명상이란 다스리는 억제력 절제심을 연마하는 것이지만, 그것 자체를 어떻게 할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타고난 monad적 특성일수도 있고, 좌우지간 창조된 상황이다. 창조를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그것도 우주법칙이다.
한번 생겨나면 안 바뀐다. 그리고 바꾸려면 고혈을 쥐어짜는 시련과 어떤 국면에 대한 진실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잠시동안 그러한 자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해서 명철하게 돌아다보게 한다.
그러한 일은, 생전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동안의 의식으로는 아무리 지랄해도 그러한 의식을 가질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온다. 생전의 의식과는 전혀 다른 의식이 갑자기 느껴지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려가는 극한의 그 무엇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통한 미망의 삶의 틀의 파괴이다.
우리는 사후상태를 본다. 이건 정말이다.
큰소리치지 말자
일단 죽으면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파충류마왕을 본다. 세상이 끝장난다
의식이 소멸되고 세상이 스러져 사라져간다
그러한 충격과 공포들 그리고 깊고 깊은 심연의 그 진실들은, 죽음이후의 의식과 유사하다. 죽음이후에 그러한 의식이 기억되어지고 느껴지고 알게 된다.
생전의식이란 Matrix에서 살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만든 의식들이다.
그러나 죽음이후의 의식들은 보다 진실에 가까운 영적의식들이다.
파충류마왕을 보고 느낀 그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어떤 상태란 죽음이후의 회고와 비슷할수도 있다.
어쨌든 명상수도란 그와 같다
혼쭐이 나야 제 정신을 차린다고 말하는데, 그게 맞다.
세상의 모든 재앙과 고통들은 어떤 의미로 인해서 생겨난다.
그것을 회피한다면 영원히 구속된다.
죽음이 해방을 가져오듯 그리고 각성을 가져오듯 재앙과 고통은 해방과 각성을 가져온다.
일반적 명상수도로서는 도저히 알수 없는 진리와 진실들이 거기에 있다.
죽음이후에 비통하게 흐느끼며 후회하는 영들을 본다.
그 흐느낌은 너무도 비통하여 말릴수조차도 없다.
생전의 잘못들에 대한 어쩔수 없는 비통함이 죽음이후의 연옥의 상태이다.(실제있다)
명상수도로는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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